7.03.2016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II

(중략)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을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 - 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삼십오 년 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써왔지만 영어에서 말하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 즉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재능이 넘친다'는 식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럴 리는 없고요, 실은 매우 단순한 얘기인데, 내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쓰고 싶을 때만 '자, 써보자'라고 마음먹고 소설을 씁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대개는 번역(영어→일본어)을 합니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작업이라서 표현 의욕과는 관계없이 거의 일상적으로 할 수 있고 동시에 글쓰기에 아주 좋은 공부가 됩니다(만일 번역을 하지 않았다면 뭔가 그런 쪽의 다른 작업을 찾아냈을 겁니다). 그리고 마음이 내키면 에세이 등을 쓰기도 합니다. 슬슬 그런 일을 해가면서 '소설 안 쓴다고 죽을 것도 아닌데, 뭘'하고 그냥 모르는 척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참 소설을 안 쓰다 보면 '이제 슬슬 써도 될 것 같은데'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눈 녹은 물이 댐에 고이듯이 표현해야 할 재료들이 안에 축적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날, 참을 수 없어서(라는 게 아마도 가장 좋은 경우) 책상 앞에 앉아 새 소설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별로 소설 쓸 기분이 아니지만 잡지에 보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뭐든 써야지' 같은 일은 없습니다.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으니까 마감 날도 없습니다. 그래서 라이터스 블록 같은 고통도 나와는 무관합니다. 굳이 말 할 것도 없지만, 그것은 나로서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편안한 일입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딱히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데 뭐든 써야 하는 것만큼 스트레스 쌓이는 일도 없으니까요(그렇지도 않은가? 내가 오히려 특이한 경우인가?).
- 村上春樹,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