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3.2016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I

(중략) 그처럼 과거에 '오리지널이었던' 것을 콕 집어내 현재의 시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라질 것은 이미 사라져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뒤에 남은 것만 집어내 마음 놓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실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시대적으로 존재하는 오리지널한 표현 형태에 감응하고 그것을 현재진행형으로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불쾌하고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인 - 경우에 따라서는 반사회적인 - 양상을 띤 것처럼 보이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저 단순히 어리석은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종종 경악과 동시에 쇼크와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하고, 특히 기성의 표현 형태에 푹 잠겨 그 속에서 지반을 구축해온 기성 권력establishment에게는 타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다져둔 지반을 그것이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틀스는 현역으로 연주할 때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이건 오히려 특수한 사례일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비틀스의 음악이 그 당시부터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음악은 일과성의 대중 음악으로 여겨졌고, 더구나 클래식에 비하면 가치가 한참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기성 권력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비틀스의 음악을 불쾌해했고 그런 기분을 기회 있을 때마다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특히 초기의 비틀스 멤버가 채용한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은,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지만, 큰 사회문제로 어른들의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비틀스의 레코드를 파기하거나 태우는 시위운동도 각지에서 열성적으로 펼쳐졌습니다. 그들의 음악과 혁신성과 높은 수준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정당하고도 공정한 평가를 받은 것은 오히려 한 세대를 건너뛴 다음이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이 흔들림 없이 '고전'화했기 때문입니다.
밥 딜런도 1960년대 중반에 어쿠스틱 악기만을 사용하는 이른바 '프로테스트 포크송' 스타일(그것은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 같은 앞선 이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을 버리고 전자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종래의 지지자 대부분에게서 '유다' '상업주의로 전향한 배신자'라는 악의적인 욕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전자악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음악을 시대별로 듣다 보면 그것이 밥 딜런이라는 자기 혁신력을 갖춘 크리에이터에게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오리지낼리티를 '프로테스트 포크송'이라는 협의의 카테고리의 감옥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던 당시의 (일부) 사람들에게 그것은 '내통'이나 '배신'일 뿐인 것으로 비쳤겠지요.
비치 보이스도 현역 밴드로서 분명 인기를 누렸지만 음악적 리더인 브라이언 윌슨은 오리지널한 음악을 창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중압감 때문에 신경이 병들어 어쩔 수 없이 장기간에 걸친 실질적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걸작 '팻 사운즈' 이후 그의 치밀한 음악은 '해피한 서핀 사운드'를 기대하던 일반 청중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점점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 되어갔습니다. 나도 어느 시점부터 그들의 음악에 공감할 수 없어 점점 멀리했던 한 사람입니다. 지금 다시 들어보면 '아, 이런 방향성을 가진 훌륭한 음악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솔직히 그 '훌륭함'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리지낼리티는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일 때는 좀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 村上春樹,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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