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2018

여시아문 IV

4. (중략) 대체 시가 나오야란 사람의 작품은 엄격하다느니 뭐니 들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거짓으로, 달콤한 가정생활, 주인공의 격에 안 맞는 응석 같은 방자함, 요컨대 그 쉽게 즐거워 보이는 생활이 매력이 되고 있는 듯하다. 졸부에 지나지 않지만, 어쨌든 돈이 있고,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라고, -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랐다는 데 대한 자부심은 우리가 보면, 완전 난센스고 웃기는 것이지만, 그들이 촌놈이라고 할 때, 얼마나 깊은 경멸감이 내포되어 있는지, 그것은 독자 제군의 상상 이상이다. - 도락가, 아니 조금 불량스럽고, 뼈대가 단단하고, 얼굴이 크며 눈썹이 굵고, 벌거벗고 씨름을 하고, 그 힘센 것이 또 자랑이어서, 뭐든지 이기면 되다고 큰소리치고, 불쾌했다느니 어쩌니 전지전능인 것처럼 건방을 떨면, 시골출신의 가난뱅이는 어찌 됐든 우선은 겁이 덜컥 난다. 그가 방귀를 뀌는 것과, 시골출신의 소인배가 방귀를 뀌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라고 그는 말한다. 머리가 나쁘고, 감수성이 둔하고, 그저 내가, 내가, 로 날이 새고, 날이 지고, 그리고 그저 일등이 되고 싶어서, 게다가 행랑채를 빌렸다 안채를 뺏는 식의 비열한 방법으로, 도대체가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 그들 완력가의 특징이지만, 짜증 같은 것을 일으켜서, 소변 마려운 것을 참아가며, 엉거주춤 서서 되는대로 뒤죽박죽 원고를 써 갈기고, 그리고는 주위사람에게 정서를 시킨다. 그것이 그의 문장 스타일에 역력히 나타나있다.
잔인한 작가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고 싶다. 그는 진부하고 난폭한 작가이다. 케케묵은 문학관에서 한 치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완고함. 그는 그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교활이다. 잘 되기만 하면, 하고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타산도 있겠지. 그래서 싫은 것이다.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완고한 아버지가 한 사람 있으면, 그 가족들은 모두 불행의 한숨을 내쉬는 법이다. 거드름 피는 것을 그만둬라. 나에 대해 "역겨운 포즈가 있어서, 아무래도 좋은 점을 못 찾겠군."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너의 이미 석고 깁스처럼 고정된 바보 같은 포즈 탓인 것이다.
좀 더 약해져라. 문학가라면 약해져라. 유연해져라. 네 방식 이외의 것을, 아니 그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되거든, 잠자코 있어라. 괜히 좌담회 따위에 나가서 치부를 드러내지 마라. 무학인 주제에, 육감이니 뭐니 믿을 것도 못 되는 것에 매달려서, 십 년이 하루같이 남의 험담이나 하면서 웃고 우쭐해 있는 놈들은 내 쪽도 질렸다. 이기기 위하여 실로 비열한 수단을 쓴다. 그리고는 속세에서 "좋은 사람이다, 결벽하고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평가되는 데 성공하였다. 거의 악인이다.
- 太宰治, 여시아문 中

여시아문 III

3. (중략) 민주혁명.
나는 그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다. 소위 유능한 청소년을 거친 파괴사상으로 내모는 것은 민주혁명에 무관심한 너희들 선배의 완고함이다.
젊은이의 말도 들어줘라! 그리고 생각해 달라! 내가 이런 여시아문(如是我門) 같은 졸문을 쓰는 것은 미쳤기 때문도 아니고, 건방지기 때문도 아니며, 남이 부추겼기 때문도 아니다. 하물며 인기를 얻으려는 것 따위는 아니다. 진정인 것이다. 예전에 누구누구도 저런 짓을 했다지, 결국 그런 것이지, 라고 가볍게 처리하지 말아 달라. 예전에 그랬으니까, 지금도 똑같은 운명을 따른 자가 있다는 식의 건방진 독단은 말아 달라.
목숨을 걸고 일을 벌이는 것이 죄인가? 적당히 꾀를 부리면서 안락한 가정생활을 목표 삼아 일하는 것이 선인가? 너희가 조금이라도 우리 고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중략) 진정한 정의란 우두머리도 없고, 부하도 없고, 자기도 약해서 어딘가에 수용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거듭 말하지만 예술에는 보스도 부하도 친구조차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막을 샅샅이 밝히면서 쓰고 있지만, 내가 이 여시아문이라는, 속세적인 평가로는 분명히 어리석은 짓인 글쓰기를 발표하는 것은, 개인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기독교적인 것에 대한 싸움인 것이다.
그들은 크리스트라고 하면, 바로 경멸의 쓴웃음을 짓고, 뭐야, 예수로군, 하며 안도 비슷한 것을 느끼는 모양이지만, 내 고뇌의 거의 전부는 저 예수라는 사람의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난제 하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자. 너희들은 고뇌의 능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능력도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너희들은 애무할지는 모르나, 사랑하지는 않는다.
너희들이 갖고 있는 도덕은, 너희들 자신의, 혹은 너희들 가족의 보전 외에는 한걸음도 떼지 않는다.
다시 묻는다. 세상에서 내쫓겨도 좋다. 목숨 걸고 일하는 것이 죄인가?
나는 내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믿기 어려울 테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약함과 고뇌는 죄인가?
- 太宰治, 여시아문 中

여시아문 II

2. (중략)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아무것도 안남더라."
이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숙취이다. 그때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 행복감이다. 그 행복감을 다음날 아침까지 끌고 가려는 탐욕, 음란, 완강함, 이 또한 대바보 선생들 중 한 사람이다. 숙취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자네들은 어째서 그렇게 염치 체면 없이 그저 탐욕스러운가.
(중략)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 해도 자네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절이라고 하면, 너무 맛대가리가 없다. 마음씨, 마음가짐, 마음 씀씀이. 이렇게 말해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즉,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작자의 정성을 다한 것이 독자에게 통했을 때, 문학의 영원성이라든가 혹은 문학의 존귀함이라든가, 기쁨이라든가 그런 것이 비로소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요리는 배만 부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지난달에도 했다고 생각하지만, 더욱이 요리의 진정한 즐거움은 양의 많고 적음은 물론 아니고 또한 맛이 있고 없음도 아니다.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한 정성, 그것이 기쁜 것이다. 정성이 담긴 요리, 짚이는 게 있겠지? 맛있겠지? 그러면 되는 것이다. 숙취를 추구하는 마음은 저속하다. 관두는 편이 낫다. 그런데 자네가 좋아하는 작가인 서머셋 몸은 조금은 숙취하게 만드는 작가니까, 자네 입맛에 맞겠지. 그러나 자네 바로 옆에 있는 다자이라는 작가 쪽이 적어도 그 할아범보다는 멋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둬도 좋지 않을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그럴듯하게 말하기 때문에 나도 그만 이런 것을 쓰고 싶어지는 거다. 번역만 하고 있으면 되는 거야. 자네 번역은 나도 꽤나 신세를 졌거든. 엉터리 에세이만 쓰면서, 요즘 자네나 저 '히히히' 선생이나 너무 어학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닌가? 어학 공부를 게을리하면 자네들은 자멸이야.
주제를 알아라. 반복해서 말하지만, 자네들은 어학 교사에 지나지 않아. 소위 말하는 사상가조차도 될 수 없어. 계몽가? 아하하, 웃기네. 볼테르, 루소의 수난을 자네들이 알겠는가. 힘껏 효도나 하라고.
몸소 보들레르의 우울을, 프루스트의 권태를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것은 적어도 자네들 주변에서는 아닐 것이다.
- 太宰治, 여시아문 中

여시아문 I

1. (중략) 델리커시(delicacy). 이런 말은 아무래도 쑥스럽지만 그런 것을 지니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은 못 느끼면서, 얼마나 남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지 모른다.
자기 혼자 잘나서, 저것은 안 돼, 이것도 안 돼, 뭐든 맘에 들지 않는 문호는 부끄럽지만 우리 주변에만 있고, 바다 건너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또 어느 문호는 다자이는 도쿄말을 모른다, 고 하는 것 같던데, 그 사람은 도쿄에 태어나 도쿄에서 자란 것을, 아니 그것만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의심한다.
저 녀석은 코가 납작해서 좋은 문학은 못해, 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요즘 정말이지 질린 일이지만, 소위 노대가들이 국어의 난맥상을 개탄하는 모양이다. 웃기는 일이다. 혼자 잘났다. 국어의 난맥상은 나라의 난맥상에서 비롯된 건대도 눈을 감고 있다. 저 사람들은 전쟁 중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들의 실체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사과하면 될 텐데.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면 될 텐데. 원래의 모습대로 죽을 때까지 같은 장소에 눌러앉으려고 한다.
소위 젊은이들도 칠칠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위계질서를 뒤엎을 용기가 없는가? 그대들에게 맛이 없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면 되지 않겠는가. 변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대로 있으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자살밖에 없다고 실감한다.
이만큼 말해도 여전히 젊은이의 과장, 혹은 기염으로밖에 못 느끼는 노대가라면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겠다. 협박이 아니다. 우리의 고통이 거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번 달은 그야말로 일반개론의, 그것도 그저 화난 분풀이 같은 문장이 되었지만, 이것은 우선 내 의지를 보인 것이니, 다음부터 바보 학자, 바보 문호한테 하나하나 묘한 애기를 아뢰는 전주곡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내 독자들에게 고한다.
나의 이런 경거망동을 꾸짖지 마시오.
- 太宰治, 여시아문 中

6.04.2018

속초

2018년 3월 6일 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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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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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acite Coffee II

2017년 12월 22일 서교동 (Top)
2017년 12월 25일 서교동 (Mid & Bot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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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acite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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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2018

Anthracite Coffee I

2017년 9월 1일 서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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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ronomers Coffee

2017년 8월 19일 연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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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B

2017년 7월 30일 합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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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2017년 6월 1일 통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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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lor Coffee

2017년 4월 28일 서교동 (Top)
2017년 8월 11일 서교동 (Bot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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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N Nothing

2017년 4월 13일 서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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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N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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