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략) 민주혁명.
나는 그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다. 소위 유능한 청소년을 거친 파괴사상으로 내모는 것은 민주혁명에 무관심한 너희들 선배의 완고함이다.
젊은이의 말도 들어줘라! 그리고 생각해 달라! 내가 이런 여시아문(如是我門) 같은 졸문을 쓰는 것은 미쳤기 때문도 아니고, 건방지기 때문도 아니며, 남이 부추겼기 때문도 아니다. 하물며 인기를 얻으려는 것 따위는 아니다. 진정인 것이다. 예전에 누구누구도 저런 짓을 했다지, 결국 그런 것이지, 라고 가볍게 처리하지 말아 달라. 예전에 그랬으니까, 지금도 똑같은 운명을 따른 자가 있다는 식의 건방진 독단은 말아 달라.
목숨을 걸고 일을 벌이는 것이 죄인가? 적당히 꾀를 부리면서 안락한 가정생활을 목표 삼아 일하는 것이 선인가? 너희가 조금이라도 우리 고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중략) 진정한 정의란 우두머리도 없고, 부하도 없고, 자기도 약해서 어딘가에 수용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거듭 말하지만 예술에는 보스도 부하도 친구조차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막을 샅샅이 밝히면서 쓰고 있지만, 내가 이 여시아문이라는, 속세적인 평가로는 분명히 어리석은 짓인 글쓰기를 발표하는 것은, 개인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기독교적인 것에 대한 싸움인 것이다.
그들은 크리스트라고 하면, 바로 경멸의 쓴웃음을 짓고, 뭐야, 예수로군, 하며 안도 비슷한 것을 느끼는 모양이지만, 내 고뇌의 거의 전부는 저 예수라는 사람의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난제 하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자. 너희들은 고뇌의 능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능력도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너희들은 애무할지는 모르나, 사랑하지는 않는다.
너희들이 갖고 있는 도덕은, 너희들 자신의, 혹은 너희들 가족의 보전 외에는 한걸음도 떼지 않는다.
다시 묻는다. 세상에서 내쫓겨도 좋다. 목숨 걸고 일하는 것이 죄인가?
나는 내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믿기 어려울 테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약함과 고뇌는 죄인가?
- 太宰治, 여시아문 中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