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략)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아무것도 안남더라."
이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숙취이다. 그때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 행복감이다. 그 행복감을 다음날 아침까지 끌고 가려는 탐욕, 음란, 완강함, 이 또한 대바보 선생들 중 한 사람이다. 숙취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자네들은 어째서 그렇게 염치 체면 없이 그저 탐욕스러운가.
(중략)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 해도 자네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절이라고 하면, 너무 맛대가리가 없다. 마음씨, 마음가짐, 마음 씀씀이. 이렇게 말해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즉,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작자의 정성을 다한 것이 독자에게 통했을 때, 문학의 영원성이라든가 혹은 문학의 존귀함이라든가, 기쁨이라든가 그런 것이 비로소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요리는 배만 부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지난달에도 했다고 생각하지만, 더욱이 요리의 진정한 즐거움은 양의 많고 적음은 물론 아니고 또한 맛이 있고 없음도 아니다.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한 정성, 그것이 기쁜 것이다. 정성이 담긴 요리, 짚이는 게 있겠지? 맛있겠지? 그러면 되는 것이다. 숙취를 추구하는 마음은 저속하다. 관두는 편이 낫다. 그런데 자네가 좋아하는 작가인 서머셋 몸은 조금은 숙취하게 만드는 작가니까, 자네 입맛에 맞겠지. 그러나 자네 바로 옆에 있는 다자이라는 작가 쪽이 적어도 그 할아범보다는 멋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둬도 좋지 않을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그럴듯하게 말하기 때문에 나도 그만 이런 것을 쓰고 싶어지는 거다. 번역만 하고 있으면 되는 거야. 자네 번역은 나도 꽤나 신세를 졌거든. 엉터리 에세이만 쓰면서, 요즘 자네나 저 '히히히' 선생이나 너무 어학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닌가? 어학 공부를 게을리하면 자네들은 자멸이야.
주제를 알아라. 반복해서 말하지만, 자네들은 어학 교사에 지나지 않아. 소위 말하는 사상가조차도 될 수 없어. 계몽가? 아하하, 웃기네. 볼테르, 루소의 수난을 자네들이 알겠는가. 힘껏 효도나 하라고.
몸소 보들레르의 우울을, 프루스트의 권태를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것은 적어도 자네들 주변에서는 아닐 것이다.
- 太宰治, 여시아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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