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2016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業 I

(중략) 내가 생각건대 사람은 원래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한 개인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적인 힘을 바싹바싹 느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생해가며 열심히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의뢰를 받아 소설을 쓰는 일도 있습니다. 직업적인 작가의 경우에는 아마 대부분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은 의뢰나 주문을 받아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세월 동안 기본적인 방침으로 삼아왔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드물지도 모릅니다. 많은 작가들이 편집자에게서 "우리 잡지에 단편소설을 써주세요" "우리 출판사에 신간 장편소설을 부탁합니다"라는 의뢰를 받아 거기서부터 일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 통상적으로 약속한 기일이 있고 때에 따라서는 가불이라는 형식으로 계약금을 받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역시 소설가는 스스로의 내적인 충동에 따라 자발적으로 소설을 쓴다고 하는 기본적인 절차는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외부에서의 의뢰나 마감이라는 제약이 없으면 소설을 시작하지 못한다는 분도 어쩌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애초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내적 충동이 없었다면 아무리 마감 날이 정해졌어도, 아무리 돈을 싸 들고 와서 울며불며 매달린다고 해도 소설이 술술 써지는 게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리고 그 계기가 어떤 것이든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가는 외톨이가 됩니다. 아무도 그/그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리서처가 붙는 일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할은 단지 자료나 재료를 수집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도 그/그녀의 머릿속을 정리해주지 않고 아무도 적합한 단어를 어딘가에서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일단 스스로 시작한 일은 스스로 추진해나가고 스스로 완성해내야 합니다. 요즘의 프로야구 투수처럼 일단 7회까지 던지고 그다음은 구원 투수진에게 맡긴 채 벤치에서 땀을 닦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소설가의 경우, 불펜에 대기 선수 따위는 없습니다. 그래서 연장전 15회가 됐든 18회가 됐든 시합이 결판날 때까지 끝끝내 혼자서 던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인데, 장편소설 한 편을 쓰려면 일 년 이상(이 년, 때로는 삼 년)을 서재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서 혼자 꼬박꼬박 원고를 쓰게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 매일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합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뭔가를 생각하다 보면 뇌는 일종의 과열 상태에 빠져서(문자 그대로 두피가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한참 동안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 책을 읽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아무래도 운동 부족에 빠지기 쉬워서 날마다 한 시간 정도는 밖에 나가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의 작업에 대비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 특히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 실제로 상당히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 村上春樹,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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