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2015

누가 바꿀 수 있는가

(중략) 청년들이 아프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강요한 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온갖 스펙을 쌓고, 자기계발을 하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고, 그래도 힘들면 스스로 힐링하면서도 아파한다. 그들의 아픔은 높은 이상을 이루지 못해서도 아니고, 세상을 걱정해서도 아니고, 부모 세대처럼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려는 투쟁 때문도 아니다. 청년 세대의 아픔은 '월급 많이 주는 정규직' 일자리를 갖지 못해서이고, 저임금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해서 오는 불평등의 아픔이다.
청년세대의 꿈이 단지 '취업'으로 쪼그라든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의 공포는 세상이 그들에게 강요한 것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었고, 바꿀 생각도 없는 불평등한 현실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세대의 아픔은 결코 스펙 쌓기와 자기계발, 긍정과 힐링으로 치유될 수 없다. 내가 치유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나의 아픔을 대신 감내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픔은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다. 청년세대가 스스로 이를 깨닫고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힐링하는 데 나서야 한다. 혼자서 긍정의 최면을 걸고 자기계발의 노력을 하면 극복된다는 미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초대기업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갖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아무리 긍정하고 힐링해도 나머지는 모두 여전히 잉여와 3포로 남아야 한다. 그러기에 자신이 아닌 세상을 힐링하고 바꿔야 한다.
지금의 정의롭지 못한 한국을 기성세대가 만들었는데 청년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는 짐을 떠넘기는 것은 기성세대가 무책임한 것이다. 더구나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틀에 맞추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세상을 바꾸라고 하니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기성세대이기에 책임이 있다. 그러기에 청년세대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말해주어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멘토질 같은 잔소리를 하려고 한다. 첫째,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 세대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는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미래는 청년세대의 것이지 기성세대의 것이 아니다. 청년세대가 바라는 세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성세대도 그들이 청년 세대일 때부터 자신의 이상을 좇아서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둘째, 청년세대에게 강요된 틀에 무조건 순응하지 말고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한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본다면, 그리고 그 모순된 현실이 노력 부족과 같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면,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방법도 없다면 분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알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절망할 필요도, 아플 이유도, 힐링할 필요도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긍정하고 자기계발에 열중하면 된다. 청년세대의 분노는 정의롭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바꾸는 시작점이자 가장 중요한 점이다. 모든 행동은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셋째, 지금의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아픔을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청년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못한 세대가 되었고, 그것은 기성세대의 탓이다. 청년세대 역시 기성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반복한다면, 그래서 이를 다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다면 한국은 미래가 없다. 10년 전 '88만 원 세대'였던 30대는 '3포 세대'로 추락했고, 다시 '5포 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20대는 쓸모 없는 나머지라는 '잉여세대'라고 자조하고,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청년세대가 이런 퇴보와 퇴행과 비정상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청년세대는 부모처럼 자식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데 그치지 말고 자식의 친구들 모두에게, 자식 세대에게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분배로 만들어진 불평등으로 인해서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고통 받고,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1%의 소수와 소외된 99%의 다수로 갈려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세상은 저절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의 불평등한 한국의 현실도 힘을 가진 기득권 세력들과 그들의 조력자들의 의도로 설계되고 실행된 결과이지 시장에서 스스로 진화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현실에 순응하고,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이 기적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나선다면 지금의 한국을 바꿀 수 있다. 청년세대만이 아니라 기성세대도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함께 분노해야 한다. 불평등한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음까지 노예가 되는 것이다. 불평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기성세대가 세상을 바꾸려는 청년세대에게 응원을 보낸다면 한국은 정의로운 사회라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 장하성, 왜 분노해야 하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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