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2020

고뇌의 연감

(중략)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쯤 막내 형한테서 데모크라시라는 사상을 들었다. 어머니까지 데모크라시 때문에 세금이 많이 올라서 소작을 거의 전부 세금으로 빼앗긴다고 손님들한테 푸념하시는 것을 듣고, 나는 그 사상에 마음 약하게도 허둥댔다. 그리고 여름이면 머슴들의 마당 풀 깎기를 돕고, 겨울이면 지붕에서 눈 내리는 일 등을 거들면서 머슴들에게 데모크라시 사상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이윽고 머슴들이 내 도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깎은 풀은 나중에 다시 깎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같다.

이또한 1918~19년경의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 삼십 년 정도 전에 일본 본토 북단의 한촌 어린아이한테까지 침투했던 사상과, 현재 이 1946년에 신문 잡지에서 칭송되고 있는 신사상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뭔가 바보 같은 느낌이란 이것을 말한다.
1918~19년의 사회 상황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그 뒤 데모크라시 사조는 일본에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적절한 문헌을 조사하면 알겠지만, 그러나 지금 그것을 보고하는 것은 이 수기의 목적이 아니다. 나는 항간의 작가이다. 내가 하는 얘기는 늘 나라고 하는 작은 개인의 역사 안에 머물러 있다. 그것을 답답해하거나, 나태하다고 욕하거나, 혹은 비속하다고 조소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후세 사람이 우리가 겪은 이 시대의 사조를 살필 때 소위 역사가들이 쓴 책보다 우리가 늘 쓰는 한 개인의 하찮은 삶의 묘사 쪽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습게 볼 게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저런 사회사상가들의 추구나 단안에 개의치 않고 나라는 한 개인의 사상사를 여기에 쓰고자 싶다.
소위 사상가들이 쓴 '왜 나는 무슨무슨 주의자가 되었는가' 등과 같은 사상 발전의 회상록 또는 선언문을 읽어도 나는 도대체가 빤히 속이 들여다보여서 허망하다. 그들이 그 무슨무슨 주의자가 된 데에는 반드시 무언가 하나의 전기가 있다. 그리고 그 전기는 대체로 드라마틱하다. 감격적이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믿고 싶다고 몸부림쳐도 내 감각이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이지, 그들의 드라마틱한 전기에는 질려버렸다.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시원찮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사상사를 쓰면서 그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억지구실만은 안 쓰려 한다.
나는 사상이라는 단어 조차에도 반발을 느낀다. 하물며 사상의 발전 따위 같은 이야기에는 짜증이 난다. 금세 들통날 서투른 연극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숫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저한테는 사상 따위 없습니다. 그저 좋다, 싫다 뿐이지요."
나는 나로서 잊지 못할 일만을 단편적으로 쓰려고 한다. 단편과 단편 사이를 연결시키려고 그 사상가들은 뻔한 거짓 설명에 몰두하지만, 속물들은 그 틈을 메운 저질스러운 거짓 설명이 더없이 고마운 듯, 찬탄과 갈채를 그 부분에 보내는 것 같다. 정말이지 나로서는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속물이 묻는다.
"당신의 그 유년 시절의 데모크라시는 그 뒤 어떤 형태로 발전했나요?"
나는 멍청한 얼굴로 대답한다.
"글쎄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요."
- 太宰治, 고뇌의 연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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