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중략) 글래머라는 것은, 한 개인이 사회에 대해 갖게 되는 선망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공통의 정서가 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로 향하다 중도에 멈춘 산업사회는 그러한 정서를 만들어내기에 안성맞춤의 사회다.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는 만인의 권리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회적 환경은 개인으로 하여금 무력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는 그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태와 현재 그 자신의 상태와의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 모순과 원인을 충분히 깨닫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인 투쟁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의 무력감과 함께 뒤섞여서 백일몽으로 융해되어 버린 선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야 한다.
왜 광고가 그럴듯해 보이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대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광고가 실제로 제공하는 것과 광고가 약속하는 미래 사이의 간극은,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 자신이 느끼는 현재의 처지와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처지 사이에 벌어진 간극과 일치한다. 그 두 간극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실제 행동과 생생한 경험에 의해서 다리가 놓여져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간극은 매혹적인 백일몽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흔히 노동조건에 의해 또다시 강화된다.
의미 없는 노동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현재는 꿈속의 미래에 의해서 '상쇄돼 버린다.' 이 미래의 꿈 속에서 노동하는 순간의 피동성(被動性)은 상상적인 행동에 의해 대치된다.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세상엔 똑같은 꿈이란 없다. 어떤 것들은 순간적이고 어떤 것들은 지속적이다. 꿈이란 언제나 꿈꾸는 사람의 개인적인 것이다. 광고는 꿈을 제조해내지 않는다. 광고가 하는 일은 단지 우리 각자에게, 우리는 아직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지만 장차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광고는 또 다른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지닌다. 광고를 만들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이 기능을 의도적으로 계획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기능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는 소비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만들어냈다. 무엇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무슨 차를 탈까 하는 선태은 의미있는 정치적 선택을 대치하고 있다. 광고는 사회 내부의 비민주적인 모든 것들을 은폐하거나 보상해 주는 일을 돕는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또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은폐해 준다.
광고는 또한 하나의 철학 체계이다. 광고는 모든 것을 그 자체의 논리로 설명한다. 그것은 세계를 자기 나름으로 해석한다.
전 세계가 훌륭한 생활에 대한 광고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배경이 된다. 전 세계가 우리에게 미소 짓는다. 광고에 의해 전 세계는 우리에게 그 자신을 열어 보인다. 세계의 모든 곳이 우리들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고 있다고 상상되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곳은 다소 동일하게 보인다.
광고에 따르면, 세련됨이란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사는 것이다.
광고는 혁명까지도 자기 식으로 소화해낸다.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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