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2016

유리문 안에서 I

8. 불유쾌함으로 가득 찬 인생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는 자신이 언젠가 반드시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이라는 경지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것을 삶보다는 더 편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느 때는 그것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지고至高한 상태라고 여길 때조차 있다.
"죽음은 삶보다 고귀하다."
이러한 말이 요즘 끊임없이 내 마음속을 오가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보다시피 이렇게 살아 있다. 내 부모, 내 조부모, 내 증조부모, 그리고 차례차례 거슬러 올라가면 백 년 이백 년 내지 천 년 만 년 사이에 길들여진 습관을 내 한 대代에서 해탈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삶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남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이란 아무래도 이 삶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는 좁은 영역 안에서만 나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인류의 또 다른 한 사람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삶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또 그 삶 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타인을 인정하는 이상, 서로의 근본 도리는 아무리 괴롭고 아무리 추하더라도 이 삶 위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할 테니까.
"만약 살아 있는 게 고통이라면 죽는 게 더 좋겠지요."
이런 말은 아무리 하찮게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쉬이 입 밖에 낼 수는 없으리라. 의사들은 잠자듯 저 세상으로 가려는 환자에게 일부러 주사를 놓아 환자의 고통을 일각이라도 연장할 궁리를 하고 있다. 이러한 고문에 가까운 행동이 인간의 덕의德義로서 용서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끈질기게 삶이라는 한마디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나는 결국 그 사람에게 죽음을 권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도저히 회복될 가망이 없을 만큼 깊디깊은 상처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 동시에 그 상처는 여느 사람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뿌리내려 그 사람의 얼굴을 빛내 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아름다운 추억을 보석처럼 소중히, 그리고 영원히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운 추억은 그녀를 죽음 이상으로 괴롭히는 처절한 상처 바로 그것이었다. 상반된 이 둘은 마치 종이의 안팎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모든 것을 치유해 주는 '세월'의 흐름을 좇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 소중한 기억을 점점 바래 갈 것이라고 탄식했다.
공평한 '세월'은 소중한 보물을 그녀에게서 빼앗는 대신, 그 상처 또한 차츰 치유해 줄 것이다. 격렬한 삶의 환희를 꿈처럼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한편 지금의 환희에 따르는 생생한 고통을 잊게 해 줄 수단 또한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깊은 연애에 뿌리박힌 열렬한 기억을 도려내서라도 그녀의 생채기에서 뚝뚝 방울져 흐르는 핏방울을 '세월'로 훔쳐 주려고 했다. 아무리 평범해도 사는 쪽이 죽는 쪽보다는 내가 본 그녀에게 적당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평소 죽음이 삶보다도 고귀하다고 믿고 있던 나의 희망과 조언은, 결국 이 불유쾌로 가득 찬 삶이라는 것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그것이 실제 실행에 있어서 스스로 자신을 범용한 자연주의자로 증거케 한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물끄러미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다.
- 夏目漱石, 유리문 안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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