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2016

유리문 안에서 II

33.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혼자 고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 저절로 남들과 교섭할 필요가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사철 문안인사, 거래, 더욱 복잡하게 얽히는 흥정관계 -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기란 제 아무리 고담古談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나로서도 역시 어려운 일인 것이다.
나는 남이 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전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언동을 모두 그 정면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천성적인 이 단순한 성품에 자신을 맡긴 채 조금도 자기를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나는 가끔 엉뚱한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뒤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면전에서까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지 않는다고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은 모두 다 닳고닳은 거짓말쟁이라고 단정해 버리고는 처음부터 상대방의 말은 들으려고도 않고, 마음도 주지 않으면서 그 이면에 숨어 있을 듯한 반대 의미만을 가슴에 새긴 채 그것으로 자신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거기에서 자기 만족과 마음의 안주를 찾아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사람을 자칫 오해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무서운 과실을 범할 각오를 처음부터 가정하고 덤벼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때로는 필연적인 결과로서, 죄없는 사람을 모욕할 정도로 후안무치의 얼굴도 준비해 두지 않으면 일이 곤란해진다.
태도를 이 양쪽 중 어느 한쪽에 서서 처신하려고 들면 내 마음속에는 다시 일종의 고민이 일어난다. 나는 나쁜 사람을 믿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악인이라고도, 또 한결같이 선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 태도도 상대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또 누구나 실행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만, 과연 그것이 상대방에게 딱 들어맞아 한 치의 틀림도 없는 미묘하고 특수한 선 위를 무난하게 걷고 있는 것일까. 내 큰 의문은 항상 거기서 복잡하게 뒤엉킨다.
나의 곡해曲解는 일단 접어 두고, 나는 과거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쓸쓸한 기억을 갖고 있다. 동시에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일부러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은연중에 그 사람의 품성에 창피를 주는 것 같은 해석을 한 경험도 많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는 우선, 지금껏 겪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다. 그리고 앞뒤 관계와 주위의 상황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는, 애매한 말이기는 하지만, 내가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직감이 얼마쯤 작용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또는 상대방을 바보 취급하거나, 드물게는 상대방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몹시 좁다. 게다가 대부분 어떤 한 사회의 일부분에서 수없이 되풀이된 경험이어서 다른 사회의 일부분으로 가지고 갔을 때 전혀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뒤 관계라든지 주위 상황 같은 것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 응용 범위가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두루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더욱이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이나 재료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극히 위태로운 자신의 직감이란 것에 의지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 직감이 과연 맞았는지 틀렸는지, 요컨대 객관적 사실에 의거해서 그것을 확인할 기회가 없을 때가 많다. 거기에 또 내 의심이 시종 안개처럼 끼어서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이 세상에 전지전능하신 신神이 있다면 나는 그 신 앞에 무릎을 꿇고서 나에게 티끌만 한 의심도 끼어들 여지가 없을 만큼 밝고 맑은 직감을 주시어 나를 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켜 주기를 기도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민한 내 앞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을 맑고 향기롭고 정직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와 그 사람의 영혼이 하나로 만나는 행복을 내려 주기를 기도한다. 지금의 나는 바보라서 사람들에게 속거나, 혹은 의심이 많아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불유쾌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만일 이것이 평생 계속된다면 인간이란 얼마나 불행한 존재일까.
- 夏目漱石, 유리문 안에서 中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