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오늘날은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그리고 사진이 이 향수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는 사진에 찍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비애감을 띠게 된다. 추하거나 기괴한 피사체조차도 사진작가의 눈길이 닿으면 그때부터 고귀해지기에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아름다운 피사체라면 이미 오랜 세월을 보냈다거나 쇠약해졌다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처러운 감정을 자아내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아찔할 만큼 변해가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카메라는 세계를 복제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형태의 생물체와 생활방식이 미처 알려지지도 못한 채 눈 깜짝할 사이에 파괴되어 간다면,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해 놓을 장치도 필요한 법이다. 앗제와 브라사이가 찍어놓은 음울하고 복잡한 파리의 모습은 오늘날 거의 사라져버렸다. 가족의 사진첩에 간직된 죽은 친척이나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이제는 이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불안감과 회한을 떨쳐버리듯이, 우리는 이제 파괴되어 버린 이웃마을과 흉측히 변해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전원 풍경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 간직해 놓았던 과거를 떠올린다.
사진은 유사-존재이자 부재의 징표이다.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불처럼, 사진은(특히 사람, 먼 곳의 풍경, 아득히 떨어져 있는 도시, 지나간 과거 등의 사진은) 우리를 몽상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진은 그 안에 담긴 대상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런 느낌은 그 대상이 멀리 떨어져 있기에 더욱 더 갈구하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곧바로 부추긴다. 유부녀의 지갑 속에 감춰져 있는 연인의 사진, 사춘기 청소년의 침대 근처에 붙어 있는 록 스타의 포스터, 유권자의 옷깃에 꽂혀 있는 선거용 배지의 정치인 얼굴, 택시 운전사들이 차양에 끼워놓고 다니는 자녀의 스냅 사진 - 이렇듯 부적처럼 쓰이는 사진은 감상적이면서도 은근히 주술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즉, 이런 사진은 또 다른 현실을 맞이하고 싶다거나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 수전 손택, 사진에 대하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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