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2019

인간들 II

3. 인간과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을 통해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당신들이 가진 진리의 명증성을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그래, 당신이 옳다. 당신이 전적으로 옳다. 논리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심지어 세상의 모든 불행을 꼽추들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옳다. 만일 우리가 꼽추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면, 우리는 재빨리 광분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우리는 꼽추들의 죄에 대해 보복할 것이다. 물론 꼽추들 역시 죄를 저지른다.
이 본질적인 것을 끄집어내려고 하려면 잠시 분열을 잊어야 할 것이다. 분열은 일단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모든 것을 요지부동의 진리들로 가득 찬 코란으로 이끌며, 그로부터 광신주의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우익과 좌익, 꼽추와 꼽추가 아닌 사람, 파시스트와 민주주의자로 나눌 수 있으며, 그러한 구분은 공박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진리란 세상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지 혼돈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 그것은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언어다. 뉴턴은 오랫동안 숨겨졌던 법칙을 수수께끼 푸는 방식으로 '발견'한 것이 아니다. 뉴턴은 창조적인 연산을 실행했던 것이다. 그는 풀밭에 사과가 떨어지거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를 정립했다. 진리, 그것은 스스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로 논쟁을 벌여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만일 모든 이데올로기가 증명되고, 모든 이데올로기가 서로 대립한다면, 그와 같은 논쟁들은 인간의 구원을 절망으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 주위의 어디서나 인간이 똑같은 욕구를 드러내는 한 말이다.
우리들은 해방되고 싶다.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곡괭이질에서 하나의 의미를 알고 싶어한다. 도형수를 모욕하는 도형수의 곡괭이질은 개척자를 위대하게 하는 개척자의 곡괭이질과 같지 않다. 도형장은 곡괭이질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있지 않다. 도형장은 물질적인 끔찍함이 아니다. 도형장은 아무 의미 없는 곡괭이질이 행해지는 곳, 곡괭이질 하는 사람을 인류 공동체에 연결시키지 않는 곳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도형장에서 탈출하고 싶다.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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