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2019

인간들 I

1. 다시 한 번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는 끝이라고 믿었고, 절망의 밑바닥에 닿았다고 믿었고, 일단 포기하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나는 평온을 얻었다. 바로 그러한 시간에 사람은 스스로를 발견하고 저 자신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내면의 그 어떤 본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충일감, 그것보다 더 우위에 놓일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바람 따라 달리느라 지쳤던 보나푸는 그 평온함을 알았던 것 같다. 기요메 역시 눈 속에서 그랬을 것이다. 모래에 목덜미까지 파묻힌 채 갈증에 서서히 목이 조여지던 나, 별들의 외투를 덮고 심장이 그렇게 뜨거웠던 내가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 내면의 그런 해방을 용이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것이 모순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창작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빵을 주면 그는 잠을 자며, 승리를 거둔 정복자는 물러지고, 너그러운 자가 부자가 되면 구두쇠가 된다. 정치 이념들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발전시키는지 먼저 알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발전시킨다고 주장하는 정치 이념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목장에 있는 가축들이 아니며, 가난한 파스칼의 출현이 이름 없는 몇몇 부자들의 탄생보다 더욱 더 중요하다.
본질적인 것, 우리는 그것을 미리 알지 못한다. 우리들 모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가장 뜨거운 기쁨을 누렸던 적이 있다. 그 기쁨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슴이 저릿저릿한 향수를 남겨주어, 우리가 한 고생이 그 기쁨을 안겨다주었다면 그 고생까지도 그리워하게 된다. 동료를 다시 만났을 때 우리 모두는 나쁜 추억들이 지닌 매력을 맛보았었다.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미지의 조건들이 없다면 우리가 무엇을 알겠는가? 인간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진실, 그것은 스스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땅이 아닌, 이 땅에서 오렌지나무들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면, 이 땅이야말로 오렌지나무들의 진리다. 만약, 다른 것이 아닌 이 종교, 이 문화, 이 가치척도, 이 유형의 활동이 인간의 내면에 충일감을 주고, 인간의 내면에 자신도 몰랐던 위대한 영주를 해방시켜준다면, 그것은 이 가치척도, 이 문화, 이 유형의 활동이 인간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논리? 논리에게 어떻게 해서든 삶을 깨달아보라고 하든지.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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