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민주정치의 진정한 적은 다름아닌 뉴스에 대한 적극적인 검열이라고 여기기 쉽다. 따라서 무엇이건 발언하고 출판할 자유가 문명 세계의 당연한 동지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진을 빼는 데 검열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냉소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이 힘은 사람들 대다수를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 그리고 이는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권력을 공고히 하길 소망하는 당대의 독재자는 뉴스 통제 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사악한 짓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 그 또는 그녀는 언론으로 하여금 닥치을 흘려보내게만 하면 된다. 뉴스의 가짓수는 엄청나되 사건의 배경이 되는 맥락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고, 뉴스 속 의제를 지속적으로 바꾸며, 살인자들과 영화배우들의 화려한 행각에 대한 기사를 끊임없이 갱신하여 사방에 뿌림으로써, 바로 조금 전 긴급해 보였던 사안들이 현실과 계속 관계를 맺은 채 진행중이라는 인식을 대중이 갖지 않도록 조처하기만 하면 된다. 이 정도면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정치적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을 약화하는 데 충분할뿐더러,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사람들이 정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끌어냈을 결의를 훼손하는 데도 충분하다. 현상태는 뉴스를 통제하기보다 오히려 흘러넘치게 할 때 오래도록 충실하게 유지될 수 있다.
정치 뉴스가 따분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뉴스가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할 때, 사회는 자신의 딜레마를 붙들고 고심하는 일에 위험할 정도로 무능해지고,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대중적 의지도 결집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사람들에게 '진지한' 뉴스를 좀더 많이 소비하라고 겁을 주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소위 진지한 뉴스 매체들에게, 대중을 적절히 사로잡을 수 있는 방식으로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진지한 기삿거리라는 게 원체 좀 지루하고, 대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너무 안이하다. 한편에는 사려 깊지만 무기력한 가르침을 제공하는 매체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책임감 따위 휙 벗어버린 선정주의를 공급하는 매체가 있다는 식의 현재의 이분법을 초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전이다.
-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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