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2018

지루함과 당혹스러움 I

6. (중략) 사실의 정반대에 있는 것은 편향이다. 진지한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편향은 무척 악명이 높다. 그것은 악의적인 의제, 거짓말, 대중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적 시도와 동일어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편향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삐걱거리는 몇몇 우파와 좌파 집단들이 편향이라는 개념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장악했을지언정,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시각만큼이나 수많은 편향들이 존재한다. 우리 자신과 세계 사이로 미끄러져들어오는 가치 있는 렌즈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월트 휘트먼이나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나 석가모니의 고유하게 편향된 시각에 따라 뉴스를 해석할 수도 있다. 모종의 정신분석학적 편향을 가진 언론 매체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분쟁에서 양쪽 모두의 죄의식과 질시에 초점을 맞춘다든지, 정치적 논쟁에서 보이는 투사projection 개념에 민감해서 경제 규모가 0.1퍼센트 줄어들었으니 나라 전체가 '우울증'에 걸렸다거나 실은 1.3퍼센트 확장됐으니 행복은 필연적이라거나 하는 주장에 대해 무척이나 회의적인 매체 말이다.
언론이 칭찬받을 만한 지점은, 사실을 모으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그 사실들의 타당성을 알아내는 (지적 편향을 통해 갈고닦은) 기술이다.
-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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