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2010
Visvim Product I
1.28.2010
雜念 IV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만족스럽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조금도 덜어내지 못한 아니, 덜어낼 수 없는 죄책감이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가득 차있다.
단지 나는 이것들이 번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단지 나는 이것들이 혹자들이 말하는 '成熟'의 과정이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용서를 구할뿐이다.
단지 나는 이것들이 번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단지 나는 이것들이 혹자들이 말하는 '成熟'의 과정이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용서를 구할뿐이다.
1.27.2010
1.21.2010
Love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Love never fails.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Love never fails.
Do You Remember
Do You Remember 2005
1. Do You Remember - Original Version
2. My Love
3. You Got Me
4. Do You Remember - Joyful Remix
5. Do You Remember - Instrumental
1.20.2010
Die FalscherⅠ
Stefan Ruzowitzky, Karl Markovics, August Diehl
'In the academy, they said my style is bad.
But it's my art.
Even if it only pleases me.'
1.19.2010
1.13.2010
예술과 상업은 물과 기름이 아니다
해질 무렵 고속철 속에서 한강을 건너며 바라본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일을 마치고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내 뒤에 앉아 있던 미국인 두 명은 여행이 피곤했는지 수면 안대를 낀 채 내내 잠들었다가 용산역에 곧 기차가 도착한다는 방송을 듣고 깨어났다. 그들은 바다처럼 넓은 한강을 보며 멋지다는 감탄사를 계속해서 뱉었다. 순간 뿌듯했지만 도미노처럼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를 보며 멋진 풍광이 순식간에 파괴된 듯한 아쉬움과 짜증이 밀려왔다. 이러한 비슷한 느낌을 음악을 하면서도 받은 적이 있다.
음악가로서, 또 예술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창의력이 떨어졌을 때 또는 자만하는 상태에 왔을 때는 그렇고 그런 도미노처럼 서 있는 아파트 모양으로 똑같은 음악들이 만들어진다. 불행해지는 거다. 매너리즘이다.
나의 20대에도 매너리즘은 찾아왔었다. '이 정도면 됐지'란 착각을 하는 아주 무서운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음악이란 없었고 한강변 아파트 같은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상실감에 빠지게 되고 무기력해졌다. 나중에는 '난 왜 이 정도밖에 안 되지?'라고 외치며 자책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매너리즘은 예술성과 상업성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찾아왔던 것 같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클래식을 하지 않는다. 클래식과 대중 음악 사이에 끼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다 갖추고픈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예술과 상업이 함께 갈 수 없는 물과 기름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예술이 꼭 굶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본다. 편견은 깨져야 한다.
얼마 전 여러 유명 예술가들이 쓴 편지들을 엮어 출간된 책 『젊은 예술가에게』를 접하게 되었다. 가상의 한 젊은 예술인이 품은 의문점들에 대해 유명 예술가들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예술인으로서 작품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판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 그것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한번에 씻어주는 책이었다. 예술이라는 창의적인 문화적 상품을 통해 대중에게 인정받고 살아가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따라오는 예술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즐기다 보면 금전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즐기는 것은 즐기는 것이고 금전은 노력해야 얻게 되는 것이니까. 난 현존하는 예술가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느냐고? 여기에는 답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예술가들이 답은 알고 있지만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역시 예술과 상업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음악 활동을 하면서, 특히 작곡가로서 음악을 써 오면서 나와의 약속을 했다. '내 가치를 높이자'. 이것이 내가 예술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값싼 손목시계라도 유명인의 손목에 차여 있다면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것처럼 나도 '이루마가 썼기 때문에' 가치가 높아지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는 음악, 상업 광고에도 쓰이는 음악 등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매너리즘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처럼 가치를 높이는 작업은 어쩌면 사람들이 비판하는 상업적 음악일 수 있다. 하지만 돌려 말하면 상업성을 띤 음악은 그만큼 예술가의 노력과 가치를 대중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일 수 있다. 시각을 달리 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난 너무 상업성을 띤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 예술가에게』 속의 젊은 예술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현실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아직 30대 초반인 나 역시 예술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해 답을 내기가 망설여진다. 다만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내 음악에 대한 주관만큼은 나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고민을 안고 있을 음악 학도들에게 이 얘기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 들어주는 대중이 없다면 음악을 쓸 이유도 없다. 대중에게 사랑 받는 예술가가 되라. 그들에게 평생, 혹은 잠시라도 추억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라. 떳떳하고 자신있게 내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라. 그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이루마, 중앙Sunday 칼럼 中
음악가로서, 또 예술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창의력이 떨어졌을 때 또는 자만하는 상태에 왔을 때는 그렇고 그런 도미노처럼 서 있는 아파트 모양으로 똑같은 음악들이 만들어진다. 불행해지는 거다. 매너리즘이다.
나의 20대에도 매너리즘은 찾아왔었다. '이 정도면 됐지'란 착각을 하는 아주 무서운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음악이란 없었고 한강변 아파트 같은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상실감에 빠지게 되고 무기력해졌다. 나중에는 '난 왜 이 정도밖에 안 되지?'라고 외치며 자책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매너리즘은 예술성과 상업성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찾아왔던 것 같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클래식을 하지 않는다. 클래식과 대중 음악 사이에 끼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다 갖추고픈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예술과 상업이 함께 갈 수 없는 물과 기름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예술이 꼭 굶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본다. 편견은 깨져야 한다.
얼마 전 여러 유명 예술가들이 쓴 편지들을 엮어 출간된 책 『젊은 예술가에게』를 접하게 되었다. 가상의 한 젊은 예술인이 품은 의문점들에 대해 유명 예술가들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예술인으로서 작품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판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 그것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한번에 씻어주는 책이었다. 예술이라는 창의적인 문화적 상품을 통해 대중에게 인정받고 살아가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따라오는 예술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즐기다 보면 금전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즐기는 것은 즐기는 것이고 금전은 노력해야 얻게 되는 것이니까. 난 현존하는 예술가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느냐고? 여기에는 답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예술가들이 답은 알고 있지만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역시 예술과 상업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음악 활동을 하면서, 특히 작곡가로서 음악을 써 오면서 나와의 약속을 했다. '내 가치를 높이자'. 이것이 내가 예술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값싼 손목시계라도 유명인의 손목에 차여 있다면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것처럼 나도 '이루마가 썼기 때문에' 가치가 높아지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는 음악, 상업 광고에도 쓰이는 음악 등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매너리즘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처럼 가치를 높이는 작업은 어쩌면 사람들이 비판하는 상업적 음악일 수 있다. 하지만 돌려 말하면 상업성을 띤 음악은 그만큼 예술가의 노력과 가치를 대중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일 수 있다. 시각을 달리 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난 너무 상업성을 띤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 예술가에게』 속의 젊은 예술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현실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아직 30대 초반인 나 역시 예술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해 답을 내기가 망설여진다. 다만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내 음악에 대한 주관만큼은 나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고민을 안고 있을 음악 학도들에게 이 얘기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 들어주는 대중이 없다면 음악을 쓸 이유도 없다. 대중에게 사랑 받는 예술가가 되라. 그들에게 평생, 혹은 잠시라도 추억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라. 떳떳하고 자신있게 내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라. 그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이루마, 중앙Sunday 칼럼 中
1.12.2010
Sesame Street
미국 어린이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가 11월로 방영 40주년을 맞았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혁명적인 프로그램이 되고자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어떤 TV 프로와도 달라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1971년 마리아 역으로 이 프로에 합류한 소냐 만자노에 따르면 이 프로가 시작되던 당시 미국 사회에는 "변화의 조짐이 역력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그 변화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중략)
'세서미 스트리트'는 미국 사회의 다문화적 배경의 이해 촉진뿐만 아니라 많은 부문에서 도움이 됐다. 교육과 오락을 혼합한 이 프로는 그보다 1년 반 앞서 시작된 코미디 쇼 '로완 & 마틴 쇼(Rowan & Martin's Laugh-In)'를 모델로 했다. 촌극과 익살, 비키니를 입은 댄서들이 등장하는 프로였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재미 있는 내용 속에 학습적인 요소를 끼워 넣고자 했다. (중략)
한편으론 '세서미 스트리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늘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 프로의 교육 철학이 구식이라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난도 있다. 또 이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자 문화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략)
방영 40주년을 맞은 '세서미 스트리트'는 축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 기념비적인 TV 프로에 쏟아지는 관심이 이 시대의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돌려지기를 바란다. 어린이들의 일생에 좋은 영향을 줄 보편적인 고품질 미취학 교육의 기반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다.
- Newsweek 中
'세서미 스트리트'는 미국 사회의 다문화적 배경의 이해 촉진뿐만 아니라 많은 부문에서 도움이 됐다. 교육과 오락을 혼합한 이 프로는 그보다 1년 반 앞서 시작된 코미디 쇼 '로완 & 마틴 쇼(Rowan & Martin's Laugh-In)'를 모델로 했다. 촌극과 익살, 비키니를 입은 댄서들이 등장하는 프로였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재미 있는 내용 속에 학습적인 요소를 끼워 넣고자 했다. (중략)
한편으론 '세서미 스트리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늘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 프로의 교육 철학이 구식이라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난도 있다. 또 이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자 문화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략)
방영 40주년을 맞은 '세서미 스트리트'는 축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 기념비적인 TV 프로에 쏟아지는 관심이 이 시대의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돌려지기를 바란다. 어린이들의 일생에 좋은 영향을 줄 보편적인 고품질 미취학 교육의 기반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다.
- Newsweek 中
1.10.2010
1.08.2010
1.04.2010
1.03.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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