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어려서부터 지워지지 않는 환영이 하나 있다. 이제 막 불이 꺼진 어두운 극장 안. 영화가 곧 시작하려는 찰나에 출입문이 덜 닫혔는지 빛이 새어들어 문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아주 희미한 빛이어서 눈이 부시거나 영화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됐지만 나는 영화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에 집중하지 못한다. 실루엣으로 빛나는 문은 영화 밖 다른 세계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고 그것은 더없이 매혹적이어서 영화가 주는 설렘을 압도한다.
나는 그후로 교실에 앉아서도, 내 방 침대에 누워서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문밖의 세계를 상상하며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어른들의 시간을 견뎌나갔다. 이 세상이 만들어내는 모든 기쁨과 슬픔, 의미와 무의미, 감각의 다발들이 극장 영화처럼 언젠가 끝날 것이고 그때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리라 믿으며 눈앞의 현실에 깊이 몰입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문을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또다른 문으로 이어지는 어른으로서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문밖에서 펼쳐질 매혹에 사로잡힌 손은 지금도 여전히 문고리만을 좇고 있다.
"어쩌다 커피 일을 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커피를 좋아해서요"라고 답한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면 한심하다는 듯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대다수의 사람은 서커스 좋아한다고 서커스 단원이 되지 않고 야식 좋아한다고 야식을 팔지는 않아요. "네. 맞아요.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죠." 다만 축복이라고 해서, 살며 일하며 아무 문도 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 너머에는 막다른 길이나 낭떠러지도 있었고 열었던 문을 닫고 뒤돌아 나오는 길은 늘 길고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문밖이 궁금하다. 그곳에는 늘 미지의 사람과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한 세상이 닫히고, 나아가고 헤어지고, 보여지고 가려지고, 그러면서 마음의 문들을 여닫고. 그러고 보니 어떤 문은 한번 닫힌 후 영원히 다시 열리지 않았다. 아니, 차마 다시 열지 못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성경 속 어느 구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서필훈,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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