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처음에는 본보기를 좇아 연습을 쌓지만, 창작자란 자가 언제까지나 본보기에서 못 벗어나는 것은 실로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확실히 말하면 당신은 아직도 누군가의 방식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목표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적'이란 애매모호한 장식적 관념을 버리는 게 좋습니다. 사는 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자연도 예술이 아닙니다. 좀 더 극언하면, 소설도 예술이 아닙니다. 소설을 예술로 생각하려고 하는 데에, 소설의 타락이 배태되어 있었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설을 지지합니다. 창작에서 가장 당연히 힘써야 하는 것은, '정확을 기하는 일'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풍차가 악마로 보이거든 주저 말고 악마로 묘사해야 합니다. 또 풍차가 역시 풍차 이외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대로 풍차를 묘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은 풍차가 풍차로 보이지만, 악마처럼 묘사하지 않으면 예술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뻔한 궁리를 이리저리 하여 낭만적임을 자처하는 멍청한 작가도 있습니다. 그런 자는 평생 가도 무엇 하나 포착하지 못합니다. 소설에서는 결코 예술적 분위기를 노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본보기인 누님 그림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벌벌 떨면서 연필로 베끼는 것 같은, 정말로 웃기는 유치한 놀음입니다. 하나도 볼만한 것이 없습니다. 분위기 양성을 기도하는 것 역시 스스로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체호프적 이라느니 하고 조금이라도 의식하면, 틀림없이 무참히 실패합니다. 무작정 글자체를 꾸미고, 일부러 한자를 피하고, 불필요한 풍경 묘사를 하기도 하고, 쓸데없이 꽃 이름을 쓰거나 하는 일은 엄중히 삼가고, 그저 진실하고 우직하게 인상의 정확을 기하는 일 한 가지만 노력해 보세요. 당신에게는 아직 당신 자신의 인상이라는 것이 없는 듯이 보이네요. 그래서는 언제까지나 무엇 하나 정확히 묘사할 수 없습니다. 주관적이 되라! 강력한 하나의 주관을 지니고 나아가라! 단순한 눈을 가져라!"
- 太宰治, 예술을 싫어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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