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정원을 못 채우는 대안학교가 꽤 늘고 있다고 한다. 고생 고생해서 대학을 나와 봐야 살기 막막한 현실이니 지금이야말로 제도학교보다 대안학교가 더 빛을 볼 때지 싶기도 한데 왜일까. 이유는 간명하다. 대안학교에 대안이 없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는 제도 학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새로운 교육을, 대안적 삶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 거기에 경쟁 교육 현실로 인한 부모의 불안감이 운영을 압박하면서 대안학교의 정체성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대안학교가 다 같진 않지만, 대안학교를 선택 가능한 교육상품의 하나로 보는 시류 속에서 부모들의 호감이 전보다 덜한 건 도리 없는 일인 듯하다.
대안은 언제나 기존 체제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부정은 대안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부정적 태도로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부정적 태도를 부정이라 착각한다. 부정적 태도는 부정의 축소판이 아니라 부정의 시늉으로 기존 체제에 기생하는 것이다. 대안에 관한 또 하나의 착각은, 대안이란 밝고 진취적인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대안의 싹을 자르기 위해 유포된 오랜 편견이다. 대안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경험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마냥 밝고 진취적일 수 있겠는가. 대안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두렵고 불안하다. 그러나 더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기에, 그 극단적 비현실성 너머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대안과 관련한 착각과 편견들은 오늘 대안과 진보를 말하는 세력에게 만연하다. 이를테면 이 순간 거리에 나붙은 선거 플래카드를 보자.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것들은 그 당이 이념도 정체성도 없이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반면에 녹색당과 노동당, 정의당의 것을 보면 기존 체제의 부정과 나름의 대안이 보인다. 그럼에도 진보 성향 시민의 대안은 민주당이다. 승산이 있으면 승산이 있다는 이유로, 승산이 없으면 승산이 없다는 이유로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의석이 부족해서 새누리당을 견제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사실과 박근혜 정권에 부정적 태도로 기생한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감춰진다. 저희끼리 탈당과 분당, 합당 논의, 공천 갈등을 벌이는 것 빼곤 아무런 정책 이슈가 없어도 여전히 절대적 대안이다. 이쯤 되면 정치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의 단계다.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당연히 늘어만 간다. 진보 성향 시민 가운데는 야권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워진 게 무작정 새누리를 찍는 사람들 때문에, 낮아진 민도 때문에 생긴 일인 양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은 반대로 민도가 높아져서, 민주당의 기만성을 꿰어보는 눈 밝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긴 필연적 상황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패악질을 말하면 '너희도 나을 건 없지 않은가' 코웃음이 돌아온다. 현실 문제에선 딱히 들고나올 게 없어 늘 대신 들고나오는 옛 민주화운동 타령도 '고생한 거 이상으로 해먹고 있지 않은가' 받아쳐진다. 초유의 민주주의 향연으로 극찬된 필리버스터는 '10개월 동안 반 협조 상태에 있다가 통과가 기정사실이 되자 벌인 싱거운 쇼'로 치부된다. 민주당이 대안이라는 건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라는 것이다.
현실과 여론의 향방은 이런데 여전히 선거를 '새누리: 민주당 중심의 야권' 대결로만 보는 건 바람직한가. 새누리와 새누리에 기생하는 민주당을 하나로 묶어, '새누리와 민주당: 대안정치 세력' 대결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지 않을까.
현실이 어려울수록 더 철저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볼모가 되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은 없다. 의회 정치가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벗어날 가능성은 대안정치 세력의 성장에 달려 있다. 설사 야권이 이기더라도 대안정치 세력이 현재 상태에 머문다면, 그게 바로 패배고 절망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안정치 세력이 새누리나 민주당에 견줄 의석을 가질 가능성은 물론 없다. 그러나 단 몇 석이 판의 균열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의석 부족이 아니라 대안 부족이다.
30여년 이어온 민주당 대안론의 숨은 목적은 진보정치 소멸이었다. 목적은 상당 수준 달성되었고 진보정치는 지리멸렬한 처지에 있다. 정의당은 진보정치 독자성보다는 민주당 중심 야권 연대 속에서 정치적 생존에 집중해야 한다. 당원이 대거 정의당으로 빠져나간 노동당은 자신을 사수하는 숙제가 엄중하다.
그런 와중에 녹색당의 행보는 이채롭다. 녹색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기본소득'이라는 정치와 경제의 두 정책 틀을 분명히 하며 대안정당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청년의 관심도 높고, 평당원으로부터 올라오는 활력도 돋보인다. 지지 여부를 떠나, 녹색당은 근래 정치적 대안의 지평에서 제 걸음을 걷는 거의 유일한 정당이다.
몇해 전만 해도 '개량한복 입은 옛 운동권 아저씨 동아리'쯤으로나 여겨지던 녹색당이 그리 일신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그들은 기존 진보정치 세력이 엄혹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 부정적 태도에 빠져들어 갈 때, 거꾸로 부정의 첫 질문을 부여잡았던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대안과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품어야 할, 그러나 다들 언젠가부터 잊어버린 질문 말이다. 야권 패색이 짙은 선거를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당신이 기억할 질문이기도 하다.
- 김규항, 한겨례 칼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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