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2015

천재는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천재'는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19세기 말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고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 인류 모두에게 진실하다고 믿는 자를 천재라고 정의한다. 내 자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나는 그 생각을 가장 위대한 것으로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쉽게 외부적인 평가와 기준에 우리를 맞추려 한다. 천재는 자기 자신 마음의 심연(深淵)에 숨어 있는 자신만의 욕망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행동으로 옮긴 자다.
자신만의 생각은 자신의 DNA처럼 각자에게 특별하다. 자신의 영적인 DNA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 특별한 DNA는 안 보이지만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중력과 같다.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DNA는 모두 한 곳을 지향하고 있다. '생각하다'라는 히브리 단어 '샤아르'는 원래 혼돈의 광야에서 질서의 도시로 들어가기 위한 '성문'이며 세속의 공간과 거룩한 공간을 표시하는 '신전의 대문'이다. '샤아르'는 경계이며 터부다. 내 자신이 정결하게 수련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그 신전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가 테베라는 도시에 진입하려 할 때, 그 경계에서 만난 괴물이 스핑크스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묻는다. "목소리는 하나이나, 처음에는 네 발로 걷고, 그 후엔 두 발도 걷고, 나중에는 세 발로 걷는 존재는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어릴 때는 네 발로 기면서 땅만 보며 산다.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처럼 자신이 보는 세계가 전부라고 착각한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자신의 두 발로 걸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신전 문'이란 의미를 가진 '샤아르'는 "저 높은 신전 문 위에서 신전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신을 관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유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생각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삶의 여정에서 어디쯤 왔는지, 그 길을 왜 가야 하는지, 자신만의 여정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기 위함이다. 우리는 불안하지만 거룩한 경계에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카르마를 찾는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숨겨진 아름다운 주제가 있다. 주인공에겐 사랑하는 딸이 있다. 그러나 그는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여행을 떠난다. 사랑하는 딸을 두고 기약이 없는 여행을 떠나야 하는 주인공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 주인공은 두렵고 불확실하며 생명을 담보로 한 미션이지만 그 여행을 감행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도 가본 적이 없고 대신 갈 수 없어 두렵지만 반드시 시도해야 하는 그 무엇이 바로 자신의 길이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감행하는 이 여행은 나에게 유일하다. 그러기에 거룩하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간 길을 흠모하고 추종하고 있는가? 내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나만의 신념, 이것이 나의 보물이자 나의 천재성이다. 만일 내가 이 보물을 발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들이 감동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 안에 숨겨진 그들만의 보물을 찾아나설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가장 심오한 나의 생각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영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숨겨져 있는 이 보물과 같은 생각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한 사람들이 붓다이며, 예수이고, 공자다.
우리는 심연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천재적인 섬광을 감지하고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생각들을 정리한 자들이 셰익스피어, 모차르트, 그리고 아인슈타인이다. 이 천재들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밤하늘의 별들을 찬양하고 그 내용을 암기했겠는가? 이들은 모두 자신의 심연에 숨겨진 이야기를 용기 있게 표현한 예술가들이다.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응시해 보자. 우리는 그런 숭고한 생각의 섬광을 발견하지만, 무시해버린다. 결국 우리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어 우리는 모두 타인들만이 가졌다고 여겨지는 행복이란 신기루를 바라볼 뿐이다. 천재들은 바로 자신의 심연에서 발견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동으로 옮긴 자들이다. 그 모습이 남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고 숨기고 싶은 것이라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그것이 오히려 내 자신의 별을 발견하게 되는 발판이 된다.
기원전 27세기 인류 최초의 도시가 있었다. 수메르 우룩이란 도시다.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에 위치한 알-와르카다. 이곳에는 이 도시를 건설한 전설적인 왕 이야기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다. '길가메쉬 서사시'다. 12개 토판문서로 이루어진 이 서사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심연을 본 사람, 길가메쉬." 여기서 심연(深淵)이란 길가메쉬가 불로초가 있다고 여긴 페르시아만의 가장 깊은 곳이다. 영어로는 'Abyss(아비스)'라고 부르는데, '바닥이 없는 장소'란 의미다. 길가메쉬는 이곳으로 내려가 불로초를 따온다. 심연(深淵)은 또한 길가메쉬의 가장 심오한 마음의 연못인 심연(心淵)이기도 하다. 길가메쉬는 자기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 자기 자신을 발견한 자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는 우리에게 자신의 심연으로 여행할 것을 권한다.
'심연'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모두 특별하고 유일하게 주어진 자신의 심연 안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면 좋겠다. 그 도구가 바로 깊은 생각인 묵상(默想)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별이 저 하늘의 별보다 더 위대하고 쓸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어느 정도 살면 깨닫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식이며 더욱이 흉내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 19세기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내 자신을 축하하고 내 자신을 노래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신도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축하해야 할 대상은 나하고 상관없는 신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내 자신이다.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자신만의 미션을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다.
- 배철현, 경향신문 오피니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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