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2012

스펙보다 스토리를 쌓아라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매년 이맘때면 거리에서도 축하 꽃다발을 품에 안은 졸업생과 가족들을 종종 보게 된다. 졸업을 하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인생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새 출발의 기대로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대학 4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졸업 축하해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고맙다는 말 대신 "우리 아이, 5학년이에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졸업 후에도 계속 취업을 준비하거나, 아예 휴학을 하고 취업 준비에 전념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다. 예를 들면 공모전 응모나 기업에서의 인턴 생활, 어학 점수 따기 등 일명 '스펙 쌓기'를 하는 것 말이다.
최근 신입사원들의 이력서를 보면 이런 대학생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선 이력서 길이가 길어졌고, 예전 세대와는 달리 공부나 학교 생활 이외의 이력도 늘었다. 그래서 이력서를 보면 '참 부지런하고 바쁘게 대학 생활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점점 더 스펙 좋은 사람들이 지원하니 기업에서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화려한 이력서는 좀 고민스럽다. 인재를 선택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다들 엇비슷한 종류의 스펙을 쌓은 데다 최근엔 면접 인터뷰조차 스터디나 컨설팅을 통해 학습하고 오는 터라 모두가 비슷비슷해져 버린 것이다. 처음엔 남과 달라 보이기 위해 최신 유행을 따르지만 결국엔 다 똑같아져 버리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요즘엔 면접을 들어가면 스펙 그 자체보다 스펙 뒤에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를 더 들으려고 한다. 그 스토리는 어쩌면 실패의 스토리일 수도 있다. 젊은이가 가진 특권 중 하나가 실패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생을 걸고 할 만한 일을 젊은 시절에 만나는 건 차라리 행운에 가깝다. 오히려 많은 사람은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므로 오래도록 재미와 의미를 느끼며 할 수 있는 일을 만나려면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경험해 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적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시도와 도전들이 당장에 열매 맺지 못하고 실패로 끝난다 해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만의 스토리가 된다. 즉 자기 목소리로 세상에 대해 얘기할 '거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그 사람은 또래의 비슷비슷한 젊은이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와는 구분되는 자기만의 이야기와 콘텐트를 가진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는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시시각각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일도 다반사다. 해법을 찾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어렵게 해법을 찾았다고 해도 다른 문제에까지 통할지는 알 수 없고,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늘날의 기업들은 학교에서처럼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어제까지는 없던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창조하는 인재를 갈구한다. 하던 방식을 넘어서 때로는 경계를 가로질러 생각할 줄 아는 창의적인 인재 말이다. 하면, 이런 창의성은 어떻게 길러지는 걸까.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에 최소한 이렇게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접근하는 것, 거기서부터 남과 다른 새로운 생각이 시작된다고. 그러니 남과 다른 풍부한 경험이야말로 다른 관점이 자라는 토양이 된다고.
기업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스펙을 많이 쌓은 사람을 찾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존 선배 사원들과는 다른 생각과 관점을 가진 인재를 구한다. 기업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문제의 다른 면이 보이고, 다른 면을 보게 되면 기존의 사고 방식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젊은이들이여, 기업은 당신이 실패를 통해 더욱 단단해졌고, 할 이야기가 많으며, 쏟을 에너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가 그대를 원하게 하고 싶다면 이미 규격화된 스펙을 쌓는 대신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라. 그러면 자신만의 개성과 존재감으로 세상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 최인아, 중앙일보 오피니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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