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2011

V For Vendetta II

2040년의 영국,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정부는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은 '국가안보'라는 명목 하에 탄압하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캠프로 하나 둘 씩 끌려가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정부는 국민들의 모든 대화를 도청하고, 거리마다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러나, 섬뜩하게도, 그 누구도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그저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동명의 만화를 영화화, 정확히는 영화 시나리오화한 것은 다름 아닌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남매다. 감독 제임스 맥티그는 매트릭스 3부작에서 줄곧 제1조 감독을 맡았으며, 스타워즈 에피소드2 : 클론의 습격에서도 제1조 감독직을 맡은 바 있다.
'이민자들, 회교도들, 동성애자들, 테러리스트들, 더러운 에이즈 환자들, 그들은 죽어 마땅했습니다! 국가를 통한 힘! 믿음을 통한 국가! (Strength through unity, unity through faith!)'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국가로 인해 억압받는 자유'다. 인종, 종교, 성적 기호 등은 모두 개인의 선택의 자유에 달린 일이라는 전제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저러한 발언이 TV로 방송되는 가상의 사회를 통해, 영화는 어떻게 국가가 교묘하게 국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위대한 조국의 형제, 자매와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악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국의 안정을 확보하고 국토를 방어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An evil exists that threatens every man, woman and child of this great nation. We must take steps to ensure our domestic security and protect our homeland.)' - Adolf Hitler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의 각종 언론 매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테러(Terror)'다. 국민들은 테러의 위협에 말 그대로 공포에 떨었고, 당시 미 의회는 9.11 테러 이후 테러단체와 관련된 수사의 편의를 위해 국민의 자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일명 '애국자법(Patirot Act)'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물론, 법안 자체가 위헌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애국자법의 통과는 이른바 '공포 정치(La Terreur)'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다. 국가는 국가의 안위라는 명목 하에 국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가?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어떠한 해답을 영화는 던져주고 있다.
극 중 주인공인 브이가 항상 쓰고 있는 것은 바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이라는 것인데, 가이 포크스(Guy Fawkes)는 1605년 영국 카톨릭 박해 정책에 대한 항거로 국왕과 함께 의사당을 폭파하려 했다 실패한 인물이다. 그와 가이 포크스의 공통점은 하나,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다는 것.
우리는 모두 우리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그것을 안보라는 이름 하에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특권과 특혜를 누리며 산다. 현대 자본주의 귀족정의 전형적인 시스템이다.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정치인들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Artists use lies to tell the truth, but politicians use them to cover the truth.)' - V
국가는 때로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고문 치사 사건을 "탁 치니 억 죽었다."라는 말로 능청스럽게 일축해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다. 언론을 통제하여 여론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도 있다. 어떤 숭고한 개인을 모욕하여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국가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국민은 여전히 방관자다. 밖에서 경찰관들과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우리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국가가 국민의 눈을 가리기 위해 만든 TV를 보며 히히덕거리고, 거짓되고 과장된 소문을 듣고 공포에 떨며, 바로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한다. (People should not be afraid of the governments. Governments should be afraid of the people).' - V
그러나 개인은 결코 약하지 않다. 약했던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단지 우리는 조금 무지했을 뿐이다. 만약에 무언가가 우리를 깨울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한번 일어나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로 잡아 수호하고 관철할 수 있다.
물론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브이는 잘 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멋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브이(V)가 우리에게 건내는 해답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것이 설령 오답일지라도, 부조리한 세상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세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이나 맥베스(Macbeth)의 대사를 인용하고, 사소한 말장난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현실의 장벽과 나날로 부조리해져만 가는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앞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실과 정의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이들에게,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마치 가뭄 속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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