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트 펑크가 콜럼비아와 계약하고 나서 공개한 포스터에는 이들의 헬멧 그림, 그리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콜럼비아 레코드의 로고만이 덩그러니 위치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적 후 콜럼비아 로고를 대대적으로 자신의 광고에 삽입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CD와 바이닐 레코드 알판 역시 콜럼비아의 7,80년대 라벨 디자인으로 장식해놓는 재치마저 발휘해냈다. 이런 디자인은 저스티스(Justice)의 2집 알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긴 했다. 첫 레이블 이전 작, 그리고 정규작으로는 약 8년의 세월 후에 도착한 'Random Access Memories'의 타이틀은 컴퓨터의 메인 메모리에 사용되는 기억장치 'Ram'의 복수형을 띄고 있었다. Ram은 기억된 정보를 읽어내기도 하고 다른 정보를 기억시킬 수도 있는 메모리로 아마도 이들이 과거 유산들을 재해석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려 한다는 의도 정도로 이 제목을 해석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루 리드(Lou Reed)의 1983년 작 'Legendary Hearts'의 앨범 커버를 연상케 하는 이번 새 앨범의 이미지가 공개됐을 당시 세계로부터의 접속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공식 홈페이지의 서버가 마비되는 해프닝마저 벌어졌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 된 이미지의 경우 단 하루 만에 10만 건이 넘는 '좋아요' 클릭 수를 달성해내기도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이들의 새 앨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미국에서는 3월 2일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SNL과 코첼라(Coachella) 페스티벌에서 예상 밖의 광고를 하기도 했으며, 세계 각국의 아이튠즈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예약 주문만으로도 전세계 6개국에서 앨범 차트 탑 10을 완수해내는 진기록 마저 일궈낸다. 일본의 경우 반다이(Bandai)에서 다프트 펑크의 감수 아래 여러 가지 포즈연출이 가능한 150mm 사이즈의 정교한 피규어 또한 발매했다. 국내에서 예약 한정 수입반을 샀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종이로 조립 가능한 3D 종이 가면을 받아서 조립해봤을 것이다.
'Random Access Memories'의 작업은 2008년도부터 시작됐다. 처음 데모 작업 결과물은 불만족스러웠고 결국 이들은 샘플링을 배제하기로 결심한다. 다섯 개의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이 진행됐고 그 중에는 유서 깊은 캐피탈(Capital) 스튜디오와 지미 헨드릭스의 일렉트릭 레이디(Electric Lady) 스튜디오도 있었다. 보컬 섹션은 주로 파리에서, 그리고 리듬 파트의 경우 미국에서 레코딩되었다고 한다. 나름 사운드 디자인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이나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 풍의 캘리포니아스러운 바이브를 일부 연출해내려 했다는데 이는 프랑스의 신예 브레이크봇(Breakbot)의 앨범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따. 특별히 플리트우드맥의 'Rumors',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넉 장의 CD로 구성된 박스 세트로 본 작을 계획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전 작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무차별 샘플 해내듯 이번에는 직접 무차별로 사람들을 '고용'해내기에 이른다. 게다가 이번 새 앨범 전반에 들리는 생 악기 소리들은 디지털스러움이 최고조에 달했던 이전 작 'Human After All'과는 완전히 대칭되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본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이렇게 거의 생 악기들로 녹음되어 있었다. 일단 드럼의 경우 마이클 잭슨의 'Of The Wall'을 비롯 수많은 80년대 명반들을 작업해온 존 "JR" 로빈슨(John "JR" Ronbinson)와 재즈 드러머 오마 하킴(Omar Hakim)이 담당했고, 베이스는 포플레이(Fourplay)의 멤버이자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허비 행콕(Herbie Hancock), 그리고 마이클 잭스의 'Bad'에서 연주해 온 네이셔 이스트(Nathan East)와 재즈 베이시스트 제임스 제누스(James Genus)등의 탄탄한 실력파들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밖에도 페달 스틸기타 명인 그렉 리스츠(Greg Leisz), 마이클 잭슨의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해온 폴 잭스 주니어(Paul Jackson Jr.)등이 합류해냈으며 오케스트라 어레인지와 몇몇 키보드는 크리스 캐스웰(Chris Caswell)이 책임지고 있다.
이런 일급 세션맨들 이외에도 대부분의 수록 곡들에는 과거의 전설은 물론 현 시대를 아루르는 아티스트들이 협력하고 있었다. 일단 참여진들의 목록을 봤을 때 꽤나 똘똘한 인물들만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결국 4월 4일부터는 본 작을 함께 작업해온 콜라보레이터 인터뷰를 하나씩 공개하기에 이르는데 제1탄은 디스코 음악의 아버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로 그 시작을 알린다. 이는 본 앨범이 가진 무게감 같은 것을 측정케 하는 어떤 척도이기도 했다. 특히 조르지오 모로더가 이 인터뷰 영상에서 'One More Time'의 한 소절을 부르는 장면은 어떤 짜릿한 기분 마저 안겨주기도 한다. 사실 거장들의 작업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앨범을 감상하기 이전 세세한 설명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을 미리 심어놓을 수도 있는 일인지라 좀 조심스럽기도 하다.
- 한상철